K
2019년 12월 2일 월 오후 2:40
K가 사온 작은 꽃다발을 조명 아래 두었다. 저녁거리로 라따뚜이를 사 뒀다. K는 익숙하지 않은 나의 공간에서 시집을 몇 개 꺼내 읽으며 기다렸다. 전날 냉침해둔 티와 피클 몇 개를 통에서 꺼냈다. 30분 남짓 걸린 음식은 맛있었다. 남은 소스로 어죽이라 부를만한 리조또도 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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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고싶다. 그래서 기척도 없이 안았다. K를 안았을 때 안긴 건지 안은 건지 착각이 들었다. 서로 껴안을 때 상대의 마음에 껍질이 돌면 다른 쪽은 민둥한 통나무가 되곤 한다. 우리는 둘 다 사람 같았다. 마음이 헛헛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사실 K도 안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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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잔 말을 들었는데 살며 처음으로 아무 갈등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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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로 마시는 술이 좋다. K는 술을 한 컵 마셨고 나는 두 컵을 마셨다. K가 나를 계속 쳐다봤다. K는 예민하고 예리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본다. 나는 내가 신끼있는 사주란 말로 좀 이겨보고 싶었다. K가 자기 앞날을 봐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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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뒤척이다 내가 이불을 흩뜨렸을 때 당신이 금방 일어나 꼼꼼히 덮어주던 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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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이 돌아가는 오전 7시 50분. 바쁘게 출근하는 차들 앞에서 K는 아침 담배를 폈고 나는 안겨있었다. 오후 1시 10분. 2시에 나가야 하는데. 우리는 밤새 데운 방바닥에 앉아 아침에 1층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삼각 김밥을 먹었다. 김 부스러기가 바닥에 날렸다. K는 물을 마셨고 나는 우유를 마셨다. 내가 씻는 동안 K가 뒷정리를 해줘서 고마웠다. K는 침냄새 나는 몸에 외출복을 그대로 입었고 나는 엊그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었다. 난방과 매트를 끄고 급하게 나와 65-번 버스를 탔다. 곧 내리자마자 뒤이어 오는 56-번 버스를 운좋게 탈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없을 거라던 2층 버스 맨 앞에 성큼성큼 가서는 오른쪽 자리에 앉은 사람을 굉장히 의식하며 왼쪽에 앉았다. 탁트인 버스 앞머리의 창 밖을 구경했다. 오늘 하루가 따뜻하고 맑다. 내 이어폰으로 K와 같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의 가사를 듣는 K는 우리말 노래를 틀어달랬다. 이 노래 제목 : 나의 미친 사랑을, 김창기. K는 오늘 기분이 좋다 그랬다. 나도 그렇다. 안 좋다고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좋았다. 나는 버스에서 일기를 썼다. K한테도 써달랬다.